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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하고 너디한 생각들/📖 책

그리스인 조르바

by 오월OWOL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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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의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


간만의 휴가 중 미뤄왔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책 제목이 워낙 유명해서 알고만 있었는데 매번 책 두께에 압도당해 펼치지 못하다가 작정하고 책장을 열었다.

(근데 이제 전자책으로 본..)

'그리스인'이라 제목이 되어 있어 역사 내용을 다루는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실제로 조르바와 여행을 했었고 그 때의 경험을 살려 쓴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조르바

소설 중 '나'와 조르바의 여행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불쑥 시작된다.

카페에서 상념에 젖은채 앉아 있던 '나'에게 조르바는 대뜸 여행을 하냐 묻더니 '날 데려가라' 한다.

기인같은 면모를 지닌 그에게 흥미를 느낀 '나'는 함께 크레타로 향한다.

 

소설 속에 묘사된 조르바는 교양 따윈 밥 말아 먹었지만

삶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고민만 하는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으로,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발 딛은 현실에 무섭도록 몰입한다.

먼저 배를 채워 놓고 그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 하지요.

 

조르바가 가장 싫어하는 건 애매한 태도다.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 섬에서 광산 사업을 하면서 매일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나'가 금욕적이고 모호한 말을 할 때 마다 조르바는 어정쩡하게 하는 것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버럭한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조르바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다.

돌을 걷어차 굴러가는 것에도 새로움을 느끼고 일할 때는 그 좋아하는 여자도 본체 만체다.

국가도, 도덕도, 규율도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건달 같은 조르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툭 까놓고 말해 조르바는 건달이다. '나'는 샌님 중 샌님이고.

그럼에도 '나'는 조르바를 존경하고 그를 통해 세상이 넓어짐을 느낀다.

날 것 그 자체의 조르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모든 것에 진심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조르바는 저울질하지 않는다.

그는 거의 생각과 동시에 행동한다. 아니 행동하면서 생각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여린 것들에 대한 연민을 지닌 점 또한 '나'가 그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조르바를 통해 대리만족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절대 그렇게 행동할 수 없기에 조르바를 보며 자유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르바를 이해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육체적인 본능을 탐닉하고 놀고 마시기만 하는 삶은 다른 우주에나 있을 법한 삶이라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삶의 허무를 맛본 지금은

거칠긴 해도 한번 쯤 조르바처럼 살아보는게 진정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80년대 번역본이다 보니 많이 쓰이지 않는 표현과 단어 때문에 사전을 뒤적이며 읽었지만

주말 내내 책을 놓지 못할 만큼 재밌었다.

책 속에서 시종일관 바다 냄새가 느껴져 집에서 맞이한 휴가였지만 바다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독서기록 No.15 / 읽은 날짜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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