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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대상]
- 불안하고 무기력한 사람
- 인생의 의미가 없어 허무한 사람
- 관계 때문에 괴로운 사람
[추천 지수]
- 반복해서 읽어볼 책!
때때로 인생의 허무가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왜 사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스러워 밤잠을 설치고 무기력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게 되었고 저자의 답변이 궁금했다.
저자 미나미 지키사이는 일본의 고승으로 40년에 걸쳐 불교를 수행하며
절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들을 마주했다.
심오하지 않게 불교가 무엇인지 전하며 이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책과 방송을 통해 알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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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가 있다는 착각
무아(無我). 뜻 그대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근본사상이다.
언뜻 받아드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럼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무엇이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나’라는 기억의 집합체이면서 다른 사람이 ‘나’임을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개념이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타인의 인정 또한 그들의 기억에 의존하므로 ‘나’는 단단한 실재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불완전한 ‘나’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내가 ‘진짜’이고 ‘있는 그대로’라고 판단한단 말인가. … 진짜 내 모습을 되찾아 그대로의 나로 살기 위해서, 또는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서 ‘나의 기억’과 ‘다른 이의 인정’ 사이를 헤매며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지 속앓이할 뿐이지 않은가.
진짜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찾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짜 나를 찾아야지 이 고통과 불안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때문에 도리어 삶이 버겁다면, 알찬 인생을 보내야 한다느니 자아를 실현하며 살아야 한다느니 하는 마음의 짐은 그만 내려놓아도 좋겠다.
저자는 착각으로 인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 권한다.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
저자는 반복해서 우리의 태생 자체가 수동적이라고 말한다.
태어나고픈 세상을 선택한 적도 없으며 외모, 부모, 능력 무엇하나 스스로 의지로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 바란 적 없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 근거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쓸쓸함과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석가는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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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연히’ 태어난 나라는 존재에 의미를 찾지 말라고 말한다.
참으로 맥이 빠지는 얘기이다.
고통의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그럼 왜 죽지 않고 살아야하는 것일까?
의문이 한가득 생긴다.
그럼 스님은 왜 사시는지요?
책을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책 제목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게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는데!ㅎㅎ..)
내가 받아드린 것으로 정리해보자면
‘나’는 우연의 산물이고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니,
허무와 쓸쓸함을 끌어안고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우리는 산다.
잘 죽기 위해 산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무엇을 위해 주먹을 꽉 쥐었는가
의문이 들고 아이러니함을 느껴도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왜 사는지에 뚜렷한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심긴 곳은 ‘우연히 놓인 자리’일 뿐이다.
지금 그곳에 계속 머무를지는 스스로 정하면 된다.
우연히 심긴 곳이 아주 척박한 곳일 수도 있다.
물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
'나'는 불완전하지만 튼튼한 두 다리와 자유의지는 실재한다.
두 다리와 자유의지로 물을 찾아 떠날 수 있다.
꽉 쥔 주먹을 풀어 고통을 놓아주고 심호흡을 하고선 고개를 들어보자.
그리고 한발짝 떨어져 달리 봐보자.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나’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다면 그래서 그저 흘려보내기만 한다면
너무 무기력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번을 곱씹으면서 내가 그저 ‘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받아드리자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삶의 목적이 ‘잘 죽는 것’이라 생각하면 지금 내가 아등바등 쥐고 있는 고민들이 무색해진다.
이뤄야할 목표도 따라야할 의미도 없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내가 해야할 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충만하게 채워간다면 꽤나 멋지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뭘 해야할지를 찾는 숙제가 남아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독서기록 No.11 / 읽은 날짜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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